대담
스물과 서른
 
조온윤×이서영

조온윤(이하 온윤) : 서영, 잘 지내고 있니? 가까이 살면서도 부쩍 얼굴 보기가 힘들어진 것 같았는데, 이렇게 교차 인터뷰를 핑계 삼아 얘기하게 돼서 좋네. 벌써 올해를 두 달 남짓 남겨두고 있어. 서른이 가기 전에 유의미한 기록을 남겨보고 싶었는데, 이 인터뷰가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

이서영(이하 서영) : 오랜만이야, 온윤! 그러게. 지역도서전 행사 이후로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아. 어쨌든 이렇게 서로의 근황과 작품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볼 수 있는 자리가 생겨 좋네. 또 이번에 공개될 너의 신작들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던 것도 즐거운 일이었어. 

온윤 : 나도 마찬가지야. 네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또 감동하기도 했고. 아무튼 우리 둘 다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서영 : 이쯤에서 준비해온 질문들을 네게 건네볼까 해. 2022년은 『햇볕 쬐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 해였지. ‘공통점’ 안에서도 밝게 채워지던 기쁨이었어. 노란 커버의 책을 나눠 들고, 다 함께 좁은 부스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던 게 문득 기억나. 첫 시집을 내고 난 이후, 네가 올 한 해를 어떻게 느끼며 통과해왔을지 궁금해. 

온윤 : 그게 올해라는 게 믿기지 않네. 벌써 오래전 이야기 같아. 그만큼 올해를 바쁘게 보내고 있기 때문이겠지?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너랑 공통점 친구들이 많이 축하해준 덕분에 첫 시집의 기쁨을 충분히 누렸던 것 같아. 그게 참 고마워. 나도 그때 공통점 친구들이랑 찍었던 인생네컷 사진도, 네가 볕 잘 드는 카페에서 찍어준 사진도 기억나. 올해를 첫 시집으로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책은 매개일 뿐이고 그걸 손에 들고 축하해준 사람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시집을 읽어준 사람들로 올해를 기억하게 될 것 같아.

서영 : 개인적으로 올 한 해 읽게 된 시집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의미 있는 시집으로 남게 될 것 같아. 한 뼘의 따뜻함이 필요할 때마다 자꾸 펼쳐보게 되었달까. 네가 추구해왔던 “공통점”이라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이 시집을 통해 다시금 가늠해볼 수 있었던 것 같고. 모쪼록 다시 한번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어.

온윤 : 축하해줘서 고마워, 서영. 네게 의미 있는 시집이 되어서 기뻐.

서영 : 이제 작품들을 한번 들여다볼까 해. 네가 쓴 시들 속에서는, 공동체를 표현하는 크고 작은 은유들이 굉장히 구체적인 질료가 되어 등장해. 사실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동인, ‘공통점’이란 이름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의 함의가 있지. 다만 각자가 해석했던 공동체성이라는 것은 조금씩 달랐던 것 같기도 해. 오히려 저마다 달랐기에 풍요롭게 진행해 온 논의들이 있었고 말이야. 다소 범박한 질문이지만 네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구조, 혹은 특정한 지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또 그것을 작업과 어떻게 연계해서 풀어내는지도 묻고 싶어.

온윤 : 맞아. 내가 공통점에 대해서 말할 때면 너는 반대로 우리가 가진 차이점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고 했었지. 우리가 그 차이점을 서로 존중해주었기 때문에 여태껏 공통점 동인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요샛말로 느슨하게 연대하는 방식으로. 거기에 어떤 대단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듯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의 구조도 특별한 건 없는 것 같아. 서로를 같은 목표를 두고 경쟁하는 대상으로 두는 게 아니라, 같은 목표를 지닌 공생 관계로 여기는 게 전부라고 생각해. 끊임없이 하나가 되기 위해 비수로 서로를 찌르는 두 사람이 있는 반면에, 반대로 팔을 꺾어 만든 둥근 원 안으로 누군가를 끌어안으며 하나가 되는 두 사람도 있는 거지. 내가 쓴 시에 여러 모습의 공동체가 등장할 수 있었던 건 지금껏 살아오면서 실제로도 수많은 공동체가 해체되거나 성립하는 순간을 목격해온 덕분이 아닐까 싶어.

서영 : 공생 관계라는 표현이 인상적인 것 같아.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공동체는 형성되는 것이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지, 네 작품 안에서는 도서관 서가를 거니는 사서와 같이 바깥에 있기에 중립적인 존재, 모두를 위해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존재, 특정한 카테고리에 묶이거나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잡는 시적 자아가 등장하곤 해. 실제로 『햇볕 쬐기』에는 아예 「중심 잡기」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이 실려 있지. 문득 네가 생각하는 중심이란 무엇일지, 그것을 지켜내는 과정이 네 시 안에서 어떤 의미망을 형성하게 되는지 궁금해.

온윤 : 나한테 중심의 의미는 점점 달라지는 것 같아. 첫 시집에 실었던 「중심 잡기」에서는 타인의 부축을 통해 내가 중심을 잡게 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최근에 쓴 시에서는 편향하지 않는 공평함의 의미에 가까워지는 듯해. 더 확장하면 객관성이 될 수도 있고. 누구 한 사람만의 주관에 휘둘리거나 한쪽만을 편애하지 않고 두루 살피는 것, 그래서 소외되는 쪽이 없도록 하는 것이 요즘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자세인 것 같아. 네 말대로 일정한 태도와 규칙으로 이용자를 대하고 책을 배가하는 사서처럼. 아직 나한테는 어려운 일이기도 해. 만약 내 안의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고 느낀다면 반대쪽으로 무게를 더해야 할 텐데,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편향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테니까. 아직은 계속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

서영 : 공간과 자간, 문헌과 문헌, 시대와 시대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움직임들 역시 인상 깊었어. 특히 이번 신작 「장서각의 나날」, 「공간과 자간」, 「도서관 불안」은 마치 하나의 시리즈처럼 읽히는데, 나란히 배치된 세 편의 시 안에서 연계된 상상력이 제각기 적절한 형식들을 만나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너의 시들은 비교적 단정한 말들을 가져오는 편인데도, 특정한 코드에 묶여 좁은 의미로 해석되지는 않아. 오히려 이쪽에서 저쪽으로 단숨에 도약하는 시어들의 근력이 돋보여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곤 해. 현재 시단에선 이러한 균형감각이 독특한 편일 것 같은데, 이번 신작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 속에서 쓰이게 된 걸까?

온윤 : 내가 쓴 것보다 좋게 읽어준 것 같아서 고마워. 이번에 쓴 시들은 네가 읽어준 것처럼 ‘도서관 연작’이라고 말해보고 싶어. 유독 도서관과 책과 관련한 내용이 많거든. 너도 알다시피 대학생 때 오랫동안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다녔는데, 그때는 도서관에 가는 게 얼마나 좋았냐면 출근이 기다려질 정도였어. 도서관 일에 익숙해졌던 때문도 있지만, 도서관이라는 공간성과 책이라는 물성이 내가 지닌 내향적인 성향과도 닮아 있어서 편안하게 느꼈던 것 같아. 책은 묵독을 통해 아무 소음도 없이 이야기를 전달받을 수 있는 매체이고, 마찬가지로 도서관은 사람들에게 말할 것을 강제하지 않고 오히려 대화를 삼가야 하는 침묵의 공간이니까. 시를 쓰려면 나와 친한 대상을 끌어올 수밖에 없을 텐데, 그곳이 나와 가장 닮아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시의 배경으로 가져오게 된 것 같아.

서영 : 책이 묵독을 통해 소음 없이 이야기들을 전달한다는 말이 참 좋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미묘한 중립성도 인상적인 듯해. 이전 질문에 이어서, 공통점 아카이브에 공개되었던 〈공간과 자간〉, 〈마음 레코드의 기능상 요건〉이라는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 문서학, 서지정보학에서 적극적으로 끌어온 영향들이 돋보였기에 매우 흥미로웠지. 아무래도 대학원을 문헌정보학과로 진학한 이후에 받게 된 영향들이 아닐까 싶은데, 이 기획들을 통해 너는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었니?

온윤 : 맞아. 문헌정보학과에 진학해서 얻은 아이디어가 많아. 〈마음 레코드의 기능상 요건〉은 문헌정보학에서 배운 ‘서지레코드의 기능상 요건(FRBR)’이라는 개체-관계 모형에서 영감을 얻었어. 어떤 개체를 이루는 주요한 내용을 3개 집단과 10개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그 유형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해당하는 개체의 정보를 구성하고 설명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더라고. 프로젝트에서는 12명 작가에게 시와 산문 작품을 의뢰하고, 유사한 내용이 있는 작품을 하이퍼텍스트로 연결해서, 결국에 모든 작품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만들었어. 그래서 독자들에게 우리가 쓰는 문학작품이 외부에서 영감을 받거나 외부에 영감을 주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어. 〈공간과 자간〉은 이번 신작시 중 하나의 제목으로 가져오기도 했어. 온라인 문학 전시를 콘셉트로 독자들로 하여금 온라인에서 문학을 읽는 경험을 약간은 새로운 시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어. 전시를 보면 작품의 재료와 제작연도 같은 게 캡션으로 달리는데 문학은 왜 그런 캡션이 없을까, 문학에도 캡션이 붙는다면 재료는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기획했는데 활자와 여백, 행갈이가 시의 형식적인 재료라면, 내용적인 재료는 이미지와 사유가 되는 것 같았어. 작품마다 그런 캡션을 붙인다면 시 한 편을 읽는 태도나 관점이 달라질 것 같았어.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때라서 온라인이라는 공간성을 함께 이야기하기에 시의적절하기도 했고.

서영 : 확실히 캡션이라는 시도가 흥미로웠던 것 같아. 한 편의 시를 구성하는 재료, 혹은 질료를 작가, 혹은 기획자가 구체적으로 언급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태도였지 않았나 싶어. 또 독자들이 눈앞에 주어진 한 편의 시를 해석할 때,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나저나 한 개체를 구성하는 관계 모형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느껴져. 3개의 집단과 10개 유형은 예를 들어 어떤 것들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줄 수 있을까?

온윤 : 아직 배운 게 부족해서 이 인터뷰를 혹시라도 대학원 교수님이 볼까 무서워지네.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가 처음 『맥베스』의 이야기를 머릿속에 떠올린다면 그것은 저작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게 되는데, 그 머릿속 저작물을 글이나 녹음 등 무언가로 표현하면 표현형이 돼. 그리고 그게 책이라는 매체를 입고 구현된 것은 구현형, 그 책들이 도서관이나 서점 등에서 입수하면 별도의 관리번호가 붙으면서 개별자료의 형태가 되는 식이야. 저작의 주제로는 흔히 알고 있듯이 개념, 대상, 사건, 장소 네 가지가 있고, 그 작품을 쓰거나 출판하거나 소장하는 등등의 주체로는 개인과 집단이 있어. 이 열 가지가 서로 연결되면서 관계를 지니는 거야.

서영 : 네 설명을 듣고 나니, 참여자로서가 아닌 독자로서도 이 기획들을 즐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나저나 온윤, 요즘엔 어떤 것들이 재밌니? 흥미롭게 읽고 있는 책이나 꽂히게 된 무엇인가가 있니?

온윤 : 나는 요즘에 꽂힌 게 별로 없긴 한데, 최근에 김오키 새턴발라드 공연 보러 간 게 기억나. 새벽에 글 쓸 때나 출퇴근길에 기분이 센치할 때에 예전부터 자주 듣던 재즈 그룹인데, 올해 들어서 서울에 갈 일이 잦아져서 공연 보러 갈 기회도 많이 생기더라고. 새턴발라드 멤버 중에 베이시스트로 있는 정수민도 너무 좋은 연주자라서 추천해주고 싶어. 정수민 3집 중에 〈빚〉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도 너무 좋아서 꼭 봤으면 좋겠다.

서영 : 꼭 한번 찾아볼게. 또 묻고 싶은 것이 있다면, 요즘에는 어떤 화두에 대해 집중하고 있는지도 궁금해. 나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 화두에 대해 집중하다가도 결국에는 말하기 방식 자체에 대해 좀 더 고민하게 되는 편인데, 반면 온윤의 시에서는 흥미로운 화두들이 매번 적절한 형식을 갖춰 등장하게 되는 것 같더라고. 한편으로는 그런 명료함이 부러웠던 것 같아. 요즘에는 무엇을 말해보고 싶은지 궁금해.

온윤 : 글쎄, 내가 집중하는 화두는 대부분 특별할 것 없는 보편적인 문제들인 것 같아. 우리가 고통으로 가득한 삶을 계속해서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 이유라든지, 내 고통을 견디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와중에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라든지, 누구나 한 번은 골몰해보게 되는 문제에 가설을 내려보는 게 화두라면 화두일 것 같아. 다르게 말하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보편적인 감정과 질문에 집중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경험은 나만이 겪은 경험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이지만, 거기서 비롯되는 감정은 누구나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지녔다는 점에서 보편적일 테니까. 앞선 질문에 대답한 말이기도 한데, 요즘에는 특히 소외를 만들지 않는 공평함의 가능성이나 균형의 윤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있어. 과연 어느 한쪽을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갖추 사랑을 주는 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서영 :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는 것 같아. 어쨌든 지금까지 다소 산발적인 질문들에 좋은 대답들을 건네줘서 고마워. 미래에 나오게 될 두 번째 시집에는, 과연 어떤 세계와 상상력들이 엮이게 될지 벌써 기대되고 궁금해. 짧게라도 괜찮으니, 앞으로 네가 쓸 시들이 어떠하기를 바라는지 이야기해줄 수 있니?

온윤 : 나야말로 좋은 질문들 건네준 덕분에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 두 번째 시집에는 아마 이번에 쓴 도서관 연작을 포함해서 나와 닮은 주변 사물을 재료 삼아 쓴 시편을 싣게 될 것 같아. 문학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 쓸모가 된다는 말을 오랫동안 믿어오고 있어. 마찬가지로 내 시가 타인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버리는 순간에 진정으로 타인을 움직이는 감화의 시가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 어려운 일이고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내가 쓰는 시가 그렇게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서영 : 네 말에 동감하는 바야. 손에 꽉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감화에 대해 문득 생각해보게 되네. 분명 네 다음 작품들도 그렇게 읽히게 될 거야.

온윤 : 그렇게 말해주니 감동이다. 이 정도면 내 얘기는 충분히 한 거 같으니까……. 이제 네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순서로 넘어가 보면 어떨까 해. 네 시 얘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최근에 축하할 일이 있었지. 지난 달에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의 발표 지원에 선정되어서 《문장 웹진》에 신작시가 공개되었잖아. (작품 링크 ☜ 클릭 시 새창 열림) 다시 한번 축하해. 발표가 끝나고 요즘에는 또 어떤 작업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서영 : 따뜻하게 축하해줘서 고마워, 온윤. 요즘은 기후위기와 인류세, 인간의 소멸 등을 주제로 삼고 기획된 전시에 들어갈 텍스트들을 만들어보고 있어. 전시가 12월에 오픈될 예정이라 즐거우면서도 다소 조급한 마음이야.

온윤 : 그렇구나. 어떤 분들과 작업하는 건지 궁금하다.

서영 :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고 계시는 박상화 작가님, 흑백의 수묵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는 설박 작가님, 먹과 콩테를 활용해 주로 평면작업을 해오셨던 윤준영 작가님이야. 현재 세 분 다 광주에서 거주하고 계시고, 매주 소촌 아트팩토리 레지던스에서 만나 회의와 작업을 진행하고 있어. 

온윤 : 멋진 분들과 작업하고 있구나. 우리 집이랑 가까운 곳이니까 전시가 열리거든 맨 먼저 방문하도록 할게! 그럼 이제 네 시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지난 10월에 《문장 웹진》에서 총 7편의 시를 발표했지. 먼저 첫 시이자 표제작인 「검은 구전과 흘러넘치는 바다」부터 이야기해보고 싶어. “생각이라는 면류관을 쓴 두 사람이 있다”는 첫 문장부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고. 이 시에서는 특히나 비장미가 강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이번 시편들에서 공통으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인 것 같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네 시의 특별함 중 하나가 이렇게 강렬한 이미지와 서사를 시 속으로 자연스럽게 끌어오는 게 아닐까 싶어. 그런가 하면 이 시에 일종의 액자 형식처럼 시어로 등장하는 “기도의 스토리텔링”이나 “검은 구전”은 또 어떤 이야기가 담긴 것일지 궁금했어.

서영 : 사실 “구전”, “기도”, “스토리텔링”은 조금씩 형식이 다르긴 하지만 ‘이야기’의 크고 작은 이름들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처음부터 의도하고 쓴 것은 아니었지만, 질문을 듣고 돌이켜보니 규모와 데시벨, 나아가는 방향이 제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서로 덧대어진 풍경을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 각종 이야기가 여러 겹으로 덧대진 그 자리는 아무래도 새까매지다 못해 윤이 나지 않을까 싶어. 그곳에 모여있는 ‘나’의 서사, 평행하게 가는 형제의 서사, 부모의 서사는 결국 인간 전반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된 것이겠지만 서로에게서 분리되기를, 개별적으로 호명되기를 원하고 있을 것만 같아. 이것은 결국 작은 이야기가 큰 이야기로부터 독립하고 있는 순간을 희미하게라도 담으려 했던 시도였어.

온윤 : 그렇구나. 그런가 하면 「검은 구전과 흘러넘치는 바다」와 「사랑하는 언니」를 보면 모두 형제자매가 등장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못다 했던 이야기를 편지하는 듯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특별히 너의 시에 언니나 형과 같은 손위의 존재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을까?

서영 : 내겐 의미 있는 부분인데 그 지점을 읽어 내줘서 고마워. 너도 알다시피 나는 동생이 네 명인 언니고 누나야. 손위의 존재를 자꾸 찾는 이유는 사실 단순한데,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첫째라는 호명과 포지션으로부터 잠깐이라도 멀어지려는 시도야. 시 바깥에선 말하지 못했던 것들,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내밀한 요구들을 조금이라도 솔직하게 써보고 싶었어. 그래서 저절로 어린 요청과 음성을 가진 시들을 자주 쓰게 되는 것 같아. 이것은 동시에 나와 내 바깥을 주객전도해보려는 다소 고전적인 시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동생이라는 말은 ‘같은 생애’라는 뜻이기도 한데, 나는 내 동생들, 그러니까 비단 혈육으로 묶인 관계 이외에도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해 본 적이 없고, 그것은 결국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이해에 대한 시도는 작품 안팎에서 계속해야만 하겠지. 

온윤 : 동생이라는 말에 ‘같은 생애’라는 뜻이 있었구나. 너무 익숙한 말이라서 새삼 신기하고 그렇네. 나도 동생이 한 명 있지만, 다섯 자매 중 첫째라는 건 전혀 다른 느낌일 것 같아.

서영 : 언젠가 지나가듯 만났던 네 동생분도 기억난다. 확실히 남매라서 그런지 분위기가 닮아있는 느낌이 있더라고. 내 경우도 정확히 말하자면 막내가 남자애라, 다섯 남매야. 우리 나이에선 흔치 않은 가족 구성인 것 같긴 해.

온윤 : 어쩌면 누구보다 언니라는 호칭을 가장 많이 들으며 자랐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나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언니」를 지금까지 읽어온 네 시 중에서 특히 좋아하는 시편으로 이 시를 손꼽을 수 있을 것 같아. 예전에 공통점에서 시 합평을 할 때 보여준 적도 있지. “사랑하는 언니”라고 호명하던 동생이 “제발 돌아오지 마”라고 당부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자신이 속한 세계가 “빛과 나무가 우거진 공동묘지”이기 때문일까 생각했어. 창문을 믿으며 웃는 천진한 언니를 지켜주고 싶어서 외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격리하려는 것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멀어지는 마음으로 읽었거든. 앞선 질문과 이어지는 질문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특별히 어떤 것으로부터 쓰게 된 시인지,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둔 시인지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서영 :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는 이들의 입장이 되어보고 싶었어. 동시에 나도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대상들을 줄곧 찾고 싶었어. 동생은 언제나 두 번째로 태어난 것,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기에 조금 더 커다란 규모의 이야기, 조금 더 앞서 나가는 것에 의지하면서도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인 것만 같아. “돌아오지 마”라는 말에서는 영영 헤어지고 싶다는 마음과 제발 내게 돌아와달라는 마음이 나란히 있기를 바랬어. 언젠가 성인이 된 내 동생이 건넨 말들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들어본 말 중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아픈 말들이었어. 문득 그 말들을 시로 변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물론 이 시가 내 동생의 목소리를 완전히 대변했다기보다는, 문득 언젠가부터 써보고 싶었던 말들을 한 편으로 정리해본 것이긴 했어.

온윤 : 그렇구나. 살면서 들어본 가장 따뜻하면서도 아팠던 말이라니, 이 시가 그런 말에서 변환된 목소리라고 생각하니까 더 슬프고 애틋하게 느껴지네.

서영 : 그러게. 나도 답변을 정리해보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 

온윤 : 「시네마」와 「아무도 없는 학교」도 인상적인 시였어. 특히 의재 허백련은 광주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유명한 화백이지. 무등산 가는 길에 의재미술관이 있기도 하고. 한편 서영은 시뿐만 아니라 미술비평도 쓰고 있잖아. 방금 말한 시들을 보면 마치 선이 굵은 회화처럼 이미지를 생동감 있게 전달한다는 생각이 들어. 이를테면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맹인은 검은 바다를 보고 있고 / 나는 어두컴컴하게 물결치는 것이 / 발목을 뜨겁게 휘감는 것이 꿈인 걸 안다”라는 부분. 글로써 어떤 이미지를 묘사하고 표현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작업인데도 말이야. 평소에 미술을 비롯한 다른 예술로부터 받는 영향이 있을까?

서영 : 직장의 특수성 때문에 영화도 많이 접하게 되고, 음악도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최초로 작가적인 영향을 주었던 사람에 관해 말해보고 싶어. 고등학생 때, 최초로 친해졌던 작가가 회화작업을 하던 언니였어. 주변에 작가적 기질을 가진 친구들이 꽤 있긴 했지만, 실제로 작업하는 사람을 만났던 것은 그 언니가 처음이었어. 신림동에 살면서 점자 그림책을 기획하고 머리맡에 각종 미술 재료들을 쌓아두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보고 싶을 때 만나러 가면 기꺼이 제일 좋은 잠자리를 내어주기도 했어. 어느 날 언니는 독일의 쿤스트 아카데미에 소속된 교수이자 작가, 피터 도이그(Peter Doig)라는 사람을 스승으로 삼고 싶다며 그의 작품들을 내게 보여주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회화로부터 흥미를 느꼈던 것 같아.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는 정말로 그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왠지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자꾸 시각예술을 하는 사람들과 엮이게 되고 함께하게 되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때 받았던 영향이 커서 그런지, 본인에게 주어진 재료와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그 물질성을 지켜내는 작가들을 좋아하는 편이야.

온윤 : 그 언니라는 분도 참 좋은 인연이다. 이건 다른 얘기지만, 너한테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같아. 주변에 너를 도우려는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것 같거든. 물론 이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는 방증이기도 하겠지.

서영 : 고마워. 사실 내가 좋은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너랑 공통점 친구들은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야. 

온윤 : 그건 네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야. 이건 방금 말했던 재료의 “물질성을 지켜내는 작가들을 좋아한다”는 말과 이어질 듯한 질문인데, 「벌집의 시간」에서는 “잘못했어요, 살아 있는 것들이 가진 풍경을 활용해 / 두터운 살과 끈적한 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라는 문장이 등장해. 어쩌면 창작자로서의 태도나 윤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 시를 쓴다는 건 어쨌든 현실에서의 슬픔이나 사랑을 시의 언어로 끌어오는 것이니까. 서영에게 현실에서의 감정이나 대상을 시로 전환하는 작업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

서영 : 나 같은 경우엔 무엇인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질 때 시를 쓰게 되더라고. 대개 그게 내 자신인 경우가 많아. 나라고 부를 수 있는 현실들, 삶에 칭칭 옭아매진 것들은 나만의 문양이면서 동시에 한계가 되는 것들이더라고. 그것을 해제하기 위해서는 분명 새로운 감각이 필요하고 발굴이 필요한데, 파고 또 파다 보면 종종 잊고 살았던 존재들과 대면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 그때 그 대상들을 피하지 않고, 두렵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 그러나 이것은 한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소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온윤 :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이라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어떤 말인지 알 것 같아. 나도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드네. 「교환일기」에서 “나는 죽는 것이 무서워 시를 씁니다”라는 문장이 있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스무 살 때 너랑 왜 시를 쓰냐는 질문을 서로 주고받았던 적이 있어. 어디였는지도 기억나. 24시간 운영하는 롯데리아 1층이었는데, 야식으로 햄버거 세트를 시켜 먹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었지. 그때 너는 죽는 게 두려워서 시를 쓰는 것 같다고 대답했었어. 나는 겨우 시로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거나 하는 시시한 대답을 했던 거 같은데 말이야. 이 문장을 보니까 그때 그 마음이 지금까지 변치 않고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았어. 그게 정확히 어떤 마음인지 물어봐도 될까?

서영 : 정말 별 얘기를 다 했구나! 민망하지만 진짜 말 그대로야. 나는 시야말로 삶에 드리워진 두려움을 가장 적극적으로 물리칠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 김혜순 시인은 『날개 환상통』이라는 시집 첫 어귀에서 우리 모두를 “작별의 공동체”라고 호명해. 나는 헤어지는 게 너무 싫은데 결국에는 다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아주 생생하고 선명해서 영원할 것 같은데, 돌연 사라지거나 점차 희미해져 가는 존재들 속에서 벌이는 각개전투들을 생각하곤 해. 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특정한 대상이나 순간을 고정하면서 동시에 풀어준다는 거야. 간직하면서도 배웅할 수 있는 장르라는 점에서 시로부터 배우게 되는 삶의 태도가 있는 것 같아. 적어도 쓸 때만큼은 용기를 내고 싶은 마음이야. 

온윤 : 두려움으로부터 시를 쓰는 에너지와 용기를 끌어온다는 게 참 대단하고 신기한 지점인 것 같아. 이번에 발표된 네 시를 읽다 보면, 시어로도 자주 등장하듯이 마치 고전을 읽는 것 같다랄까? 그렇다고 예스럽다는 뜻은 아니고, 시의 화자가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여러 사람의 인생을 지나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야 할 거 같아. 실제로 여러 인생을 살지는 못하겠지만, 그만큼 많은 이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내면의 두께를 쌓아온 거겠지. 

서영 : 실제로 고전을 흉내 내려고 시도해보기도 했어. 대개 작가들이 그렇듯이, 당대에 묶이고 소환되는 작품들을 의식하면서도 (어찌 보면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들의 영향에서부터 멀찍이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 투박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고민한 뒤에 옮겨보고 싶었어. 여러 사람의 인생을 지나온 것처럼 느껴진다는 평은 되려 네게 돌려주고 싶은 표현이기도 해. 사실 온윤 네 시야말로 대상에 대한 섬세한 고려와 존중이 훌륭한 디테일이 되어 담겨 있으니까.

온윤 : 별말씀을……! 시가 아닌 현실에서 네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운 게 많아. 나는 다소 소극적인 면이 있어서 너처럼 누군가를 위해 애정을 깊이 건네주지는 못하거든.

서영 : 하하……. 뭔가 민망하네. 사실 나는 너에 비해, 사람들에게 둔탁하고 단순한 방식의 애정들만 건네왔던 듯해. 아무튼 노력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시도하고 노력해보고 싶네. 

온윤 : 다른 질문도 하나 하고 싶어. 서영 너와는 공통점으로 같이 활동해오기도 했지만 그 전에 스무 살 때, 그러니까 2012년에도 아림이랑 하던 스터디로도 함께했었는데 당연히 기억하겠지? 그때는 10년 후인 서른 살의 우리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몰랐겠지. 다만 그때 함께 오랫동안 시를 쓰자고 말했던 게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네. 그렇다면, 네가 생각하는 10년 뒤의 공통점과 우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다시 10년 후인 마흔 살의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니?

서영 : 부디 모두 무탈하고 건강했으면 좋겠어. 시는 써도 좋고 안 써도 좋아.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 함께 휴가를 맞춰 여행을 갈 수 있음 좋겠어. 외국어 공부하고, 요리도 할 수 있는 일상을 지켜내면서, 만날 때마다 웃긴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실 그 정도가 나의 바람이야.

온윤 : 맞아. 언제 만나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다면 좋겠네. 나도 자문자답을 해보자면, 마흔이 되어서도 다들 순수함을 지키고 있다면 좋겠어. 재력에 보탬이 되지도 못하고 남들에게 쉬이 존중받지도 못하는 시를 읽고 쓰고 있다는 건 분명 순수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니까. 순수한 사람들은 우정이나 사랑에 값어치를 매기지 않고, 명예와 출세를 위해 타인을 짓밟아 서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다만 시가 우리에게 하듯이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고 사물의 이면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겠지. 다들 계산을 모르는 바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야. 일터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돈 한 푼에 아쉬워하며 지내다가도 공통점이 되어 모였을 때는 네 말마따나 그 모든 게 그저 웃음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어찌 됐든 우리는 대단한 야망이나 비즈니스 관계로 엮인 게 아니라 이런 세상에서 시를 쓰겠답시고 모여 앉은 사람들이니까.

서영 : 맞아. 앞으로 한 살씩 더 먹어가며 부딪히고 깨지고 아주 깊은 의문들과 대면해야 할 순간도 오겠지만, 각자만의 명랑함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언젠가 황현산 평론가의 글에서 본 말인데, 결국에는 명랑도 덕목이래. 어쨌든 행복의 방법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기를, 공통점을 포함해,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말이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 마음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될지라도, 서로에 의해 하루를 세워낼 수 있는 순간이 오겠지.

온윤 : 서로에 의해서 하루를 세우다니, 너무 좋은 말인 것 같아. 나한테는 너만큼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명랑한 면이 적은 거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교차 인터뷰에 응해줘서 고마워. 올해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되면서 계획했던 활동 중 하나가 오랫동안 가까이서 내 시를 봐주었던 사람들에게서 작품에 관한 비평과 조언을 듣고 싶다는 거였어. 오랜 시간 함께한 만큼 내가 과거에 어떤 마음으로 어떠한 시를 썼는지, 또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도 잘 알 테니까. 처음에 너에게 요청을 했던 건 우리가 스무 살 때부터 시 이야기를 나눠왔던 때문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너의 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어. 인정해줄지 모르겠지만 나는 네 시의 오랜 애독자이기도 하니까. 사실 최근에는 서로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색하고 어려웠던 것 같은데, 이렇게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 너는 어땠니?

서영 : 이런 방식의 인터뷰는 처음으로 해보았는데, 정말 재밌고 좋았어. 특히 네가 쓴 시들을 차분히 읽고 말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기뻤고. 그리고 오랫동안, 꾸준히 내 시를 읽어줘서 고마워, 온윤. 다소 웃긴 말이지만, 나는 네가 지난 십 년 동안 알게 모르게 나를 트레이닝 시켜왔다고 생각해. 그 사실이 참 따뜻하고 고마워. 언제부턴가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게 되는데, 그중 한 사람이 너라는 걸 이번에 말해주고 싶었어. 앞으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아 가보자.
※ 이 인터뷰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 2022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문학 분야 연구생 조온윤의 연구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물과 서른

조온윤, 이서영

2022
대담, 2명이 나눈 56개의 대화. 스무 살부터 서른 살,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

조온윤

광주에서 시를 쓰며 지내고 있다. 문학동인 공통점에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e-mail : onewnx@naver.com
이서영

광주 출생 및 거주. 장르적 구분에 갇히지 않는 글쓰기를 지향하며 공통점과 함께한다.

instagram : @applenenenene0
e-mail : tjdud312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