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 밥 /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처럼

고민형

   인디언 밥



   인디언 밥이 그립습니다. 동명의 과자도 있지만, 둘 사이에 어떤 연관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인디언이 여기까지 와서 그런 벌칙에 등장했을까요. 고무줄놀이하면서 군가를 부르게 된 이유도 모르고 신데렐라 노래에 “80년대”가 나오는 이유도 모릅니다. 박스 안에 담겨 있던 구슬은 버려졌습니다. 어디 어디에 쓰레기로 만들어진 산이 있다고 합니다. 유원지에는 과자로 만든 집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뭐가 가능한지 묻지 않습니다. 죽기 전에 아이가 되면 참 좋겠습니다. 아이는 마약에 취한 영혼 같기도 합니다. 도박에 중독된 사람은 먹거나 마시지 않아도 배고프거나 목마르지 않다고 합니다. 
천사를 본 사람에게 이단 심문관은 천사가 옷을 입었느냐고 묻습니다. 대답한 사람은 당장에 불태워집니다. 부끄럽지만 맞고 싶습니다. 혼자서 생각하고 쓰는 것은 그만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정신분석학자의 글을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 한 명을 눈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나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환상이라고 하면 저는 주마등이 떠오릅니다. 사람들 속에서 죽고 싶어요. 눈을 감고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강렬하게 느끼고 싶어요. 손바닥이 날아옵니다. 나는 몸을 비틀고 날개뼈를 들어 올려요. 이대로 끝날 수 있다면. 사형수들은 소원을 말해도 됩니다. 미국 영화에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형수를 본 적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잘못이듯 사형도 잘못된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약물을 받아들였습니다. 눈을 감고 친구들이 만든 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누가 나를 팔꿈치로 찌른 걸까요. 무릎에 힘이 풀리고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겠습니다. 눈앞에 한 사람을 두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되는데 아무리 벽을 두드려도 이 사람은 아픈 줄 모릅니다.

인디언 밥

고민형
2023
시, 1행에 657자. 인디언 밥, 고무줄놀이 하며 부르는 군가, 신데렐라 노래.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처럼


 
   사슴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눈을 뜰 때
   그는 그곳이 어디인지 자기가 전날 밤 잠든 그곳에서 정확하게
   일어났는지 알까.
   깜짝 놀라 펄쩍 뛰지는 않을까.
   사냥꾼의 총소리에
   달아나는 사슴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들이 모이는 어떤
   장소가 있는 것은 아닐까.
   잠을 자지 않는 동물도 있다. 물에 사는 어떤 동물은
   한쪽 뇌는 자고 다른 한쪽 뇌는 깨어 있고.
   전래동화에는 그런 장면이 나온다.
   나무에 도끼를 박아 넣으며
   정(丁) 정(丁)
   소리 내는 나무꾼.
   우지끈
   숲에
   안기는 나무.
   그에게 숨을 헐떡이며 사슴이 다가온다.
   나를 숨겨주시오, 나를.
   그 사슴에게는
   돌아갈 곳이 없고
   말하는 사슴은
   말하지 않는 사슴이 가기로 한
   그곳으로 가지 못하는 사정이 있다. 아니면
   지독한 사냥꾼이 오늘이야말로
   도망가는 사슴이 가는
   그 땅으로 가보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르겠다.
   환상의 그대를 소개해준다는 말을
   들으면 달콤한 기분을 느낄까,
   극한 흥분을 겪을까.
   그것도 아니면
   한쪽 뇌는 나무에
   한쪽 뇌는 사슴에
   그렇게 반반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고 산속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애인도 떠나고
   아이들도 보이지 않고
   취해버렸다,
   한바탕
   취해서
   도끼고 뭐고 내버렸다,
   라고 생각하게 될까.
   왜
   그래서 산에
   옹달샘에
   젊어지는 기운이 있고
   또
   바둑 한 판 두고 내려왔더니
   그새 세상은 몇십 년이 흘러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시고
   새색시였던 아내
   할머니가 되어
   맞아주었다는 그런 이야기
   산을 휘돌아
   두 사람이 꼭 맞으면
   오래오래 살면
   이대로 끝나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나는 나무를 도끼로 찍고
   사슴에게 달려가고
   새를 날려 보낸다.
   새는 어디로 가는 걸까.
   그들이 가기로 한 장소가 정해져 있는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자기도 모른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바람처럼

고민형
2023
시, 74행에 678자. 정(丁) 정(丁) 정(丁) 정(丁), 우지끈 넘어지는 나무.

   시작 노트



   이 시 두 편을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 말씀드리려다 보니 문득 잉카의 얼어붙은 산꼭대기에서 발견된 소년, 소녀 미라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세밀하게 조각된 장난감을 가지고 배부르게 먹고 똥도 싸지 않은 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코카인 한 주먹을 입안 가득 물고 있었습니다. 그걸 씹다 잠든 것 같았습니다. 저와 그들의 죽음 사이엔 공통분모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거라곤 오늘날 코카인 한 줌보다 훨씬 더 강한 마약성 진통제가 유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를 포기한 사람들은 그 약을 매일 입에 털어 넣거나 주사기로 몸에 밀어 넣습니다. 또 최근에도 산꼭대기에서 얼어 죽은 등산가들은 한동안 그 자리에 방치되거나 영면에 들어 표지판 역할을 한답니다. 간혹 도시의 사람들도 길거리에서 죽습니다.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굳이 말씀드리자면, 제가 시 쓰기를 통해 원하는 건 강력한 항우울제, 마약성 진통제일까요? 청년지원단체의 설문조사는 제게 삶의 목표, 불면증 여부, 우울감에 대해 묻습니다. 난 모든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TV에서는 코카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야기합니다. 코카인은 각성제로 사람을 휴식하게 하기보다는 날뛰게 하고 수면장애, 인성장애 등 정신적인 장애를 입힙니다. 그렇군요! 사실 제가 아는 것이란 별로 없습니다. 겨울 산에서 잠드는 일이란, 추위도 고통도 없는 마지막이란 얼마나 고요할까, 그런 상상을 할 뿐입니다. 머리 위로 눈바람이 불고, 들리지 않는 귀로 들리지 않는 소리가 들리고 무언가를 한 주먹 문 입에서 침은 흘러내리고. 아무도 돌아온 적 없다는 영원한 휴식. 의사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사람들은 믿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평온하게 죽기를 원합니다. 가족의 품에서 마지막을 맞이한다면 더 이상의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가족보다 더 그리운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써보려고 했습니다. 가족보다 더 달콤한 그리운 잠이 오는데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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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형

2022년 시집 『엄청난 속도로 사랑하는』을 출간했다.

e-mail : tedandbea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