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RPLANE HURRICANE / 윈터 워커

김나연

   AIRPLANE HURRICANE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던 날
   태풍을 조심하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태풍에 휩쓸려 타국으로 날아간 남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대사관으로 갔겠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겨우겨우 말하고서
      
   외국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을까
      
   장마가 시작되었다
   어제 주문한 장화가 오늘 왔다
   웅덩이를 찰박찰박 가로지르며
      
   빗방울이 모든 것들을 때리는 소리가
   백색소음이 되는 날이면

   빗줄기에 갇힌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비가 아주 많이 오던 날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내달린 적 있다
   온몸이 젖어 들어가는 것만을 느꼈다
      
   이상하지
   우산을 썼을 땐 들리던 소리가
   직접 맞으니 들리지 않는다는 게
      
   구름은 어느새 생겨난다
   손톱이 자라듯이
      
   그날,
   자동차 경적마저 빗소리에 잠겼을 때
   강한 바람이 불었다면
      
   휩쓸려 날아가고 싶어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으로
   날아가 버리고 싶어
      
   일상을 보내다가
   숨이 막혀올 때
   바란 적 있다


AIRPLANE HURRICANE

김나연
2023
시, 31행에 338자. 빗방울이 만드는 백색소음.

   윈터 워커



   숨을 참는 습관이 생겼어요
   살고 싶어지려고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과
   다른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
   어디론가 바삐 뛰어가는 사람

   나는 그들을 보고
   그들은 나를 보지 못해요

   좁은 골목길을 걸어요
   아무렇게나 버려진 담배꽁초와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재활용 쓰레기봉투 사이를
   가로질러요

   나에게 달려오는 바람을
   그대로 맞으며

   걸으면 걸을수록 비좁아지는
   세상에서 마주치는 바람은
   너무나도 강해서
   숨을 쉴 수 없게 돼요

   겨울은 공평하게 혹독하니까
   나는 모두가 그런 줄 알았는데

   *

   아름다운 꽃을 갖고 싶다가도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버려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멀어지고 싶어져요

   솔직하지 못한 시간이 늘어나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눈 쌓인 자동차 위로 뛰어오르는 고양이를
   끈질기게 바라보세요

   나뭇잎의 미세한 진동이 사라질 때까지

   미친듯이 말하고 싶은 마음과
   입을 다물고 싶은 마음이 공존해서

   *


   서로 귓속말을 하며 킥킥거릴 때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바라며
   
   여전히 내 옆에 나란히 누워 잠든
   사랑하는 사람을 내려다보는 순간
   
   이대로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나는 바깥으로 나가요
   
   겨울의 담배 연기는 영혼처럼
   입속을 빠져나가고
   
   바람이 울면서 돌아다녀요
   이곳저곳 구석구석
   모든 곳에서 나를 지켜봐요
   정작 나는 볼 수 없는데
   
   온 감각으로
   스며들어요
 

윈터 워커

김나연
2023
시, 51행에 520자. 사랑하는 사람과의 귓속말, 울면서 돌아다니는 바람 소리.

   시작 노트



   공교롭게도 겨울과 여름의 시를 쓰게 되었다. 나는 여름도 겨울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왜 두 계절을 쓴 시가 나오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것보단 싫은 것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걸까?
   올해 여름에는 처음으로 나를 위한 장화를 구입했다. 비가 올 때마다 젖는 신발도 축축한 양말을 신고 일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장화를 신고 다니면서, 왜 이렇게 좋은 걸 여태까지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여행은 좋아하지 않아서 상상으로 해결한다. 처음으로 쓰려 했던 시는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의 나는 보고, 듣고,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혹독하니까. 상상 속에서 나는 쉽게 죽는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버린다.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 상상 속에서는 쉽게 벌어지니, 매력적이고 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걸 시로 쓰면 나만의 취미를 모두에게 공개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 글은 비교적 덜 읽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곧 겨울이 온다. 여름과 겨울 중 굳이 택하라 한다면 나는 여름인데, 겨울엔 숨을 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져서, 겨울이 되면 집안에 틀어박혀 겨울잠만 자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사는 중이다. 저번주에는 오천 원이 당첨되었다. 1등이 된다면 컨테이너를 하나 사서 한 달 동안 틀어박혀 글만 써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솟구친다. 그럼 나는 그 마음을 살살 달랜다. 조금만 참아. 내가 언젠가 곧 꺼내줄게. 그 언젠가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죽기 전에는 그래도, 한 번쯤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그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언제든 닥쳐올 불행과 절망을 두려워하면서도, 온전히 글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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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광주에서 거주 중인 공통점 멤버. 요즘엔 뮤즈의 'you make me feel like it's halloween'을 즐겨 듣는다.

e-mail : my_salmo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