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공교롭게도 겨울과 여름의 시를 쓰게 되었다. 나는 여름도 겨울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왜 두 계절을 쓴 시가 나오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좋은 것보단 싫은 것이 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그런 걸까?
올해 여름에는 처음으로 나를 위한 장화를 구입했다. 비가 올 때마다 젖는 신발도 축축한 양말을 신고 일해야 하는 것도 싫었다. 장화를 신고 다니면서, 왜 이렇게 좋은 걸 여태까지 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여행은 좋아하지 않아서 상상으로 해결한다. 처음으로 쓰려 했던 시는 “이미지 트레이닝”이었다. 모든 것들을 상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의 나는 보고, 듣고,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혹독하니까. 상상 속에서 나는 쉽게 죽는다. 쉽게 사랑하고, 쉽게 버린다. 현실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 상상 속에서는 쉽게 벌어지니, 매력적이고 허무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걸 시로 쓰면 나만의 취미를 모두에게 공개해버리는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이 글은 비교적 덜 읽을 테니,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곧 겨울이 온다. 여름과 겨울 중 굳이 택하라 한다면 나는 여름인데, 겨울엔 숨을 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져서, 겨울이 되면 집안에 틀어박혀 겨울잠만 자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매주 로또를 사는 중이다. 저번주에는 오천 원이 당첨되었다. 1등이 된다면 컨테이너를 하나 사서 한 달 동안 틀어박혀 글만 써보고 싶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솟구친다. 그럼 나는 그 마음을 살살 달랜다. 조금만 참아. 내가 언젠가 곧 꺼내줄게. 그 언젠가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죽기 전에는 그래도, 한 번쯤은 쓰고 싶은 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생기지 않을까? 그 순간을 기다리며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걸까? 언제든 닥쳐올 불행과 절망을 두려워하면서도, 온전히 글만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