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삶은 박살 난 꿈의 파편 중 어느 하나의 끝자락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사람과 다름없었다. 그때마다 시간을 초과해 나타나는 손길이 있었다. 그 질감이 우악스러웠는지 부드러웠는지 이제는 손이 닿았다는 감촉만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 손길이 나를 외면한 적은 없었다.
늦더위 시월의 기분은 어떠했지. 외투를 팔에 걸치고 걸었던 거리에서 풍기는 가을 냄새. 시들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자신이 없다. 일순간 점등되는 가로등으로 빼곡한 거리에서 언제나 들키는 감정들. 누가 지금 웃었거나, 기침을 했거나, 달아나기 시작했거나 하는 순간들. 술에 취한 친구들끼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러 편의점에 들어가는 그런
사소해서 소중한 순간들. 희망도 그때는 버러지처럼 기어 오지 않았지. 단지, 나에 의해 슬프게 왜곡된 순간들. 자신이 없다. 나를 벗어난 공포마저 내가 유별나다 생각을 하고 그런 식으로 나도 일상에 편입되고 싶어 하고, 많은 이유로
내가 내 삶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시는 시작되었다. 현실에서 깨어났을 때 꿈이었다. 그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박살 난 꿈속에서도 그 손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신에게 버림받으면 지옥에 가면 될 일이겠지만 자신에게 버림받으면 그곳이 지옥이 된다는 걸 나는 모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