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스스로를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인 히드라에 비유하면서 “저는 학교 선생, 가정교사, 측량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수, 일용직 노동자, 연필 제작자, 유리 사포 제작자, 작가 그리고 때로는 삼류 시인입니다”라고 썼다. 1837년 하버드 대학교가 졸업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설문에 그가 보낸 답신이었다. 소로는 평생 안정된 직장 없이 여러 가지 일을 했기에 얼핏 한량이나 루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자연과 삶의 원리에 대한 치열한 탐구자이자 통합적 능력을 지닌 인간이었다.
그가 나열한 직업 중에 악기 제작자나 연주자는 없지만, 소로는 직접 플루트를 만들어 연주하기를 즐겼고, 아이올리안 하프를 제작해 창가에 두고 바람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고 한다. 콩코드 박물관에서 소로가 만든 아이올리안 하프를 보고는 바람이 연주하는 음악이 궁금했다. 마침 소로의 초상이 그려진 음반이 눈에 띄어 들어보니, CD에는 바람이 내는 진동음과 함께 다양한 자연의 소리들이 담겨 있었다.
나는 소로가 누구보다도 청각적 인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그가 잘 듣는 사람일 뿐 아니라 내면에 자기만의 목소리와 음악을 지닌 시인이었다는 뜻이다. 소로는 스스로를 삼류 시인이라고 겸손하게 불렀지만, 세계의 소리와 진동을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유려하게 번역할 줄 아는 뛰어난 시인이었다. 철로가에 서서 바람에 전깃줄이 우는 소리를 하염없이 들었던 사람이었으니, 분명 고통에도 민감한 귀를 지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소로가 만든 플루트도, 아이올리안 하프도, 주인을 잃은 채 콩코드 박물관 전시실에 우두커니 놓여 있다. 그 오래된 악기들 앞에서 나는 그가 들었던 바람의 음악을 들으려 애쓰면서 한참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