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열쇠 / 유리 열쇠

안미린

   얼음 열쇠



   친구의 어둠을 오래 기억하는 아이가 
   얼음을 얼릴 때
   
   얼음 속에 잠가둔 것은 
   누군가 잃어버린 열쇠였다
   
   아이에게 어둠은 모호한 것이었지만
   겨울에 오래 쓰다듬어준 것들
   
   옅은 지문이 불러오는 기억에 대해서
   
   아이는 잠시 
   아이에 머무르며 생각했다

   떠나간 계절처럼 어른이 되고 싶다고 
   
   차고 투명하게 잃어버린 열쇠가
   어둠을 열어둔 것이라면
   
   어떤 어둠을 잠이라고 믿고 싶다고
   
   옅은 지문의 온기에 
얼음이 갈라지는
   밤의 자장가

   
   서툰 꿈속에서 자라나는 목소리
   
   얼음을 얼리면서 열쇠의 미래를 굳히는
   
   여름의 어둠 속에서 
   벌써 눈을 기다려도 좋았다


얼음 열쇠

안미린
2023
시, 19행에 219자. 옅은 인기척에도 끊어지는 자장가.

   유리 열쇠



   어둠 속에서 눈이 오고 있었다
   
   유리 열쇠가 빛나고 있었다
   
   겨울밤 아이는 
   잃어버린 열쇠의 기억을 찾았고
   
   그것이 지난여름과 다르게
   친구를 불러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떠난 친구의 음악을 닮았다는 데까지
   생각이 흘러갔다

   눈 속에 숨겨둔 유리 열쇠가
   차고 투명한 악기로 읽힐 때
   
   어떤 어둠은 꿈 없는 잠이었으며
   
   유리가 깨지는 묵음도 있다는 것
   
   친구의 사물을 쏟으면
   닫힌 계절이 열리고
   
   눈을 녹이면서 열쇠의 미래를 굳히는
   옅은 지문의 온기가 있었다
   
   아이에게 어둠은 모호한 것이었지만
   
   잠시 돌아오는 오랜 친구처럼
   눈사람을 열고 있었다 

유리 열쇠

안미린
2023
시, 19행에 221자. 조용히 깨는 잠과 조용히 깨지는 유리 소리.

   시작 노트



   오래전 이국의 묘지에서 작은 은빛 열쇠를 발견했다. 그것이 열쇠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잠시 투명한 경험을 했다. 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어떤 것을 마주한 것. 그것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몸을 기울였던 것. 작고 어둡게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 내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열쇠의 형태가 드러난 것. 

   열쇠에 손끝이 닿은 순간, 차가운 순간, 온몸이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열쇠는 작고 깨끗하고 가벼웠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김을 세게 불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직’ 아이일 것 같았다. 어쩌면 잠시 ‘다시’ 아이가 된 건지도 몰랐다. 장난감 열쇠를 들고 묘지에 온 아이. 은빛 열쇠를 잃어버린 아이. 나는 그 아이의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이국의 묘지에서 아이의 어둠을, 내 친구의 어둠을 생각했다. 몇 밤의 어둠을 지나, 꿈속을 지나, 아이가 열쇠를 찾아 돌아오는 밝은 한낮을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었다. 

   장난감은 장난감 열쇠로 열 수 있다는 것. 
 
   나는 열쇠를 발견한 자리에, 보드랍고 단단한 흙바닥에, 은빛 열쇠를 꽂아두고 묘지를 떠났다. 

프로필_안미린_대지_1.png
안미린

시집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 『눈부신 디테일의 유령론』이 있다.

e-mail : moonbow90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