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오래전 이국의 묘지에서 작은 은빛 열쇠를 발견했다. 그것이 열쇠라는 걸 알게 되기까지 잠시 투명한 경험을 했다. 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이는 어떤 것을 마주한 것. 그것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몸을 기울였던 것. 작고 어둡게 그림자를 만들어낸 것. 내 그림자가 드리운 곳에 열쇠의 형태가 드러난 것.
열쇠에 손끝이 닿은 순간, 차가운 순간, 온몸이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열쇠는 작고 깨끗하고 가벼웠다.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김을 세게 불면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은 ‘아직’ 아이일 것 같았다. 어쩌면 잠시 ‘다시’ 아이가 된 건지도 몰랐다. 장난감 열쇠를 들고 묘지에 온 아이. 은빛 열쇠를 잃어버린 아이. 나는 그 아이의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이국의 묘지에서 아이의 어둠을, 내 친구의 어둠을 생각했다. 몇 밤의 어둠을 지나, 꿈속을 지나, 아이가 열쇠를 찾아 돌아오는 밝은 한낮을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잊을 수 없었다.
장난감은 장난감 열쇠로 열 수 있다는 것.
나는 열쇠를 발견한 자리에, 보드랍고 단단한 흙바닥에, 은빛 열쇠를 꽂아두고 묘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