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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변경 / 우리의 물이 우리를
윤은성
명의변경
얼음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났고
여러 명의 언니들과
참가하지 못한 피켓 시위들과
결석이 더 잦았던 중국어 수업과
굴뚝과 청소부와
두 새
멀리
얼음이 얼고
모조리 깨지기를 반복하는 겨울
내리는 눈을 맞아보지 못한 채
한강이 얼고 또 녹는 그 모든 일에
참여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며 졸고
걸려오는 연락을 받고
고양이 밥에 새로운 밥을 겨우 부어두고
밤에는 비어 있는 화분을 또 치우지 못한 채
천사를 만나기 어려웠다
겨우내
그가 살아 있는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흔들거리던 사람들이 뒤돌아 되묻고 있었다
그게 뭐냐고
아직 사람이 사람을 구하는 줄 아냐고
플래카드 무더기로 붙은 길목
횡단보도
펄럭이고 있었고 더 강하게
펄럭이고 있었고
찢어진 곳들은
찢어지고 있었고
찢어지다 멈춘 곳은
찢어지다 멈춘 대로
골목에 고여든 바람만이
여기서 모든 것을 움직이게 하는
전부처럼 보였다
얼굴에 덮쳐오는 찬바람에 순간
창을 닫으려 하는데
바뀌는 날씨들을 시시각각 느낄 줄 아는 사람들이
순서 없이 속속
죽어가고 있었다
곡괭이를 든 내가
다시 멈춰서 새로 얼기 시작한
얼음을 깨부수고 있었다
얼굴을
창밖에 들이밀고
깨진 얼굴을
당신의 얼굴에 들이밀고
연회가 펼쳐지는 당신의
얼굴 속에 들이밀고
개인지 토끼인지
당신이
사랑하던 우리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체들을
녹아버릴 동토에
매장하고 있었다
얼음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명의변경
윤은성
2023
시, 58행에 502자. 갈라지는 얼음, 녹아버릴 동토.
우리의 물이 우리를
천장에
물이
천장에 스몄다가
고이기 시작한
물이
떨어진다
바닥에
우리는 바닥에
구부러진 등의 우리가 바닥에
물처럼 마음대로 뻗지 못하고 바닥에
물처럼 둥글게 모여들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바닥에
팔을 뻗으면 우리조차
만져지지 않고
물이
천장에 스며든
구옥 바깥의 날씨가
웅성거림조차 없는
구옥 빌라의 외벽에
피 흐르는 고래와
더운 바람이 가득할 때
죽은 교사들 소식이
여름을 채웠을 때
나는 빈소를 찾아가는
어린 학생처럼
무언가 다 알아버린 강아지의
앉아 있는 모양처럼
적응하기 어려운 날씨 틈틈이
밤과
우는 사람들의 거리
연인들이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강아지와 노인이 기꺼이 서로에게
반려자가 되기로
마음먹는 틈틈이
아이가 자신의 말을 하고
혼자 점심을 먹지 않고
사자도 기린도 자신만의
영원을 빼앗기지 않는
농부가
수확할 곡식을
한 톨도 잃지 않는
내게 모습을 흘리고도 완전할
너의 거리 틈틈이
물이
메워지고 있었다
꼭
해야만 할 말이
물 위에
떠다니고 있었다
우리의 물이 우리를
윤은성
2023
시, 49행에 357자. 말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 물 위에 떠다니는 말들.
시작 노트
젖은 바닥에 여러 개의 귀가 물에 쓸려다니고 있었다
그걸 줍지 않는 한 어떤 소리도 듣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명조차 없는 밤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는데
나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모두와 안전했다가 모두 잃는 일이 잠깐씩 마음에서 일어났다
이미 잃고 있었다
윤은성
거리와 동료, 시(詩), 그리고 수라 갯벌의 친구. 시집 『주소를 쥐고』를 펴냈다. 기후활동과 문학연구를 함께하고 있다.
e-mail : yescjdm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