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항아리

저는 내향적인 인간입니다.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죠. 언제나 대중 속에 몸을 숨기고 그들이 흘러가는 방향으로 묻혀가곤 합니다. 눈에 띄는 걸 끔찍이 싫어해서 사람들 앞에 제 주장을 피력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게 되어 어떤 손해가 생긴다고 해도 저는 조용히 그 손해를 감수하는 쪽을 택하고 말죠. 아무렇지 않은 척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겁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저를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하거나, 아니면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시에, 조그만 일에도 감정의 동요가 심하지만 그걸 그대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침착한 사람으로 오해받기도 하죠.

이쯤 되니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들과의 친교도 익숙하지 않아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을 기피하곤 합니다. 대화를 이끌어가는 재주도 없어 당신이 제게 먼저 말을 걸어주신다 해도 곧잘 맥이 끊겨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화는 서로를 마주보고 선 두 사람이 해야 하는 배드민턴과 같은 것인데, 아무리 쉬운 공을 준다 한들 상대방이 받아치지 못한다면 랠리가 이어지지도 못할 테니까요. 운동신경만큼이나 대화의 신경이 부족한 저는 라켓을 어설프게 휘두르곤 셔틀콕이 툭, 제 발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겠지요. 랠리가 바쁘게 오가야 하는 코트 위로 침묵만이 어색하게 흐르는 것을 그대로 방치하면서요. 그러나 오해는 없었으면 합니다. 그 모든 것이 당신을 싫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까요. 사람들과의 만남을 꺼리면서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요. 사실은 저도 사람을 싫어하는 건지 좋아하는 건지 스스로 헷갈릴 때가 많습니다. 어떤 때에는 사람들의 행동에 진심으로 감동을 받고 그들을 사랑하게 되지만, 또 어떤 때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이 그들에 대한 환멸로 가득 차버리곤 하니까요. 안타깝게도 요즘의 제 일상은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고 저 자신을 정의하고 싶어요. 그건 아마도, 누군가의 온갖 불행을 상상하고 그 사람을 증오하며 보냈던 시간들보다, 사람들을 사랑하고 또 그들로부터 위로를 받곤 했던 순간들에 더 많은 희망을 걸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얼마 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옛 시대의 유물들을 보고 왔습니다. 분청사기라든지, 흑유자라든지, 선조들이 남긴 그 물건들은 뱀의 뱃속 같이 긴 시간을 무사히 통과하고 이곳에 당도했다는 자체만으로 애틋하게 느껴졌지요. 도자기 하나하나가 지구를 몇 백 바퀴는 휘감을 수 있는 시간의 실을 뭉쳐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저에게 단연 커다란 감동을 주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달항아리라는 백자였습니다. 조선 영조 후기 혹은 정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크고 둥그스름한 조선백자인데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달항아리라는 별칭을 갖게 됐죠. 꽃과 새, 물고기 무늬로 치장한 수많은 도자기들 사이에서 그 둥그런 조선백자는 다만 아무런 장식도 없이 조용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 희고 수수한 도자기는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제 눈에 띄었죠. 아아, 이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런 치장도, 욕심도 없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수만 있다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이렇게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눈길과 사랑을 받을 수만 있다면. 저는 달항아리를 처음 마주한 아주 짧은 순간 황홀경에 빠진 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라보는 내내 정말이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매화와 수국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지도, 피부 위에 두루미와 물고기를 기르지도, 그 흔한 물결무늬 하나 주장하지 않아요. 백자라고는 하지만 백자 특유의 청정함과 결백함을 뽐내지도 않습니다. 백색보다는 뿌옇고 탁한 막걸리에 가까운 색을 띄고 있죠. 모양도 완전한 원형이 아니라 군데군데가 찌그러지진 데다 몸통의 균형이 살짝 기울어있기까지 합니다. 완벽한 균형과 엄정한 대칭을 추구하는 이들은 그 달항아리를 보고 어떻게 이런 엉터리가 박물관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걸까 의아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바로 보았겠지요. 꾸밈없이 투박한 피부 위에 남아있는 사람의 손자국을요. 불완전함으로부터 나오는 인간적인 아름다움을요.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 성질을 말입니다.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너그러운 말인가요. 그 말에는 인간이란 반드시 어떤 결핍을 지니고 있다는 것과 동시에, 삶에 있어 필연적으로 실패를 겪게 된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달항아리가 불균형이라는 실패의 형태로서 하나의 완전한 작품이 되었듯 인간이 지닌 실패의 가능성과 불완전함이 곧 인간의 완성된 형태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달항아리에서 그렇게나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었던 것도 제가 사랑해 마지않는 인간의 성질을 바로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달항아리는 또한 그것의 원형인 달의 성질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달은 해처럼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을 멀게 하지도, 바람과 힘을 겨루며 죄 없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 하지도 않습니다. 달은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고요하게 세계를 내려다볼 뿐이고 땅 위의 사람들도 오늘은 달이 유난히 밝구나, 아름답다, 말하며 달을 올려다볼 뿐입니다. 전쟁과 질병, 증오처럼, 인간은 지구를 소유하려고 하기에 오늘날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달을, 달은 인간을 소유할 수 없기에 둘 사이에는 아무런 욕망과 갈등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달을 본떠 만든 그 조선백자에서 미완으로서의 완성이라는 인간적인 면모를, 그리고 무욕의 어떤 경지라는 비인간적인 면모를 동시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움을 바라고 또 아름다움을 갈구하나요. 하지만 달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며 다만 이치에 따라 자신을 비우고, 또 채우길 반복합니다. 아름답고자하는 마음을 내려놓음으로써 비로소 갖게 되는 순수한 아름다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지닌 심미안은 같았던 걸까요. 달항아리가 만들어지기 한참 전에 고려의 문인 이규보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산에 사는 스님 저 달빛이 탐이 나

우물에 비친 달을 물병에 길어가네

그 스님 산사로 돌아와 깨달았겠지

병을 기울면 달도 비게 된다는 것을

달은 강물을 길어내고 또 길어내어 바닥을 드러내게 한들 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를 깨닫게 합니다. 달은 인류에게 수천 년 동안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아폴로의 우주비행사들이 그 위에 성조기를 꽂기 전까지 인간이 달을 가지려는 그 어떤 시도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아폴로 11호의 비행사들도 달의 표면 위에다 발을 딛는 일에는 성공했다 할 수 있겠으나, 단지 그것뿐이었습니다. 달에 간 비행사들이 그곳에서 마주하고 경탄한 것은 달보다는 차라리 달에서 바라본 지구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텔레비전과 라디오 앞에 있던 전세계 사람들은 확인하게 됐지요. 달에는 풀 한 포기도, 방아 찧는 토끼도 없다는 사실을요. 달이 가진 거라곤 텅 빈 몸뚱어리뿐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달에게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은 고작 몸의 부스러기인 돌멩이뿐.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달에게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달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빌어 왔던 것 같습니다. 인간들이여, 손에 쥔 무용한 강물과 돌멩이 내려놓기를. 강물 위로 비치는 얼굴 일그러지고 몸이 자꾸만 기운다 해도 근심 않기를. 어쩌면 달항아리처럼 순수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제 바람도 달빛을 병에 길어가려는 스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욕망하는 모든 건 물병으로 강물의 달빛을 긷는 것과 다르지 않겠지요. 그리고 저는 이렇게도 떠올려봅니다. 언젠가 강물 위에 달빛이 뜨지 않는 날도 있을 거라고요. 보름을 밝힌 뒤에는 반드시 지구의 그림자 뒤로 사라지는 달을 보며,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자신의 소멸을 겸허히 예감했던 것 같습니다.

*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불상 앞 안내판에 적힌 글자를 마음속으로 읽고 마음속으로 대답했습니다. 전시관을 역순으로 들어온 저는 대한제국, 조선, 고려를 지나 통일신라시대에 멈춰있었습니다. 그날은 태어나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본 날이었고 그래서 달항아리를 처음으로 보았던 날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뒷짐을 지고 느린 걸음으로 시간을 회귀하며 입구 가까이서 달항아리를 보고 느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습니다.

서울은 토요일 오전에 입사 면접이 있어서 오게 된 거였습니다. 박물관은 원래 계획에는 없었는데 돌아가는 열차 예매가 늦어 떠버린 시간을 죽이기 위해 들른 거였죠. 서울에 올 기회가 별로 없으니 여기까지 온 이상 모든 전시관을 보고 말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박물관은 제 예상보다 훨씬 크고 넓었습니다. 저는 통일신라에서 멈춰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리에 슬슬 무리가 왔던 거지요.

석가불은 여기저기 쏘다니지 않고 몇 천 년 동안 한 자리에 앉아만 있으니 그렇게 무사하게 보전되고 있는 걸까요. 어쩐지 석가불의 그 표정도 모든 근심 고통에서 해방된 양 편안해보였습니다. 저도 그를 따라 지친 다리를 쉬게 하고 싶었습니다.

저는 적어도 삼국시대까지는 섭렵하고 돌아가기 위해 잠깐 쉬어갈 요량으로 휴게실로 향했습니다. 휴게실엔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 한 쌍이 잠에 든 건지 눈을 감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다정해보여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은커녕 남들에게 말 한 마디 걸지 못해 사람을 사귀는 일은 일찌감치 포기한 저로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으니까요. 그들 앞을 지나쳐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은 저는 없는 어깨 대신 벽에 기대어 잠깐 눈을 감았습니다. 휴게실에 그 연인 외에는 딱히 시선을 걸어둘 곳도 없었기 때문이지요. 공간을 그득 채우는 고요함. 그러나 저 멀리서 예고처럼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요. 저를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한 중년의 여자가 화가 잔뜩 나서 소릴 지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닌 맞은편에 앉은 한 아이에게요. 눈을 떠보니 그새 선잠을 자던 연인은 사라지고 없고 그 자리엔 대신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아있었습니다. 화가 난 중년 여자는 아이의 엄마인 것 같았습니다. 여자는 소리를 지르는 동시에 과장된 동작으로 분주하게 손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만 보니까 단순히 손짓이 아니라 수어였습니다. 그 분주한 동작 때문인지 여자는 몇 배는 더 화가 난 것 같이 보였습니다.

아이에게 청각장애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수어와 입말을 함께 쓰는 엄마와 달리 아이는 수어를 할 뿐 아무 입말도 하지 않았거든요. 그 아이도 무언가 불만이 있는지 엄마의 훈계를 듣고만 있진 않았습니다. 엄마에게 질세라 두 손으로 열심히 말을 만들어 무언가를 주장하고 있었지요.

물론 저는 그들의 대화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드문드문 아이 엄마가 수화 대신 큰소리로 윽박을 질렀기에 대화의 요지를 파악할 순 있었습니다. 널 위해 기껏 데려왔는데 딴 짓만 하고 돌아다니고 있으면 어떡하냐는 게 아이 엄마의 입장 같았고, 아이는 반대로 이런 곳에 데려오길 원한 적 없다며 지루함을 토로하는 것 같았습니다.

엄마는 크고 단호한 동작으로 수화를 만들며 열을 내다가, 이내 제 풀에 지쳤는지 한숨을 푹 쉬고는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태도를 바꿔 아이에게 조곤조곤한 손모양을 건넸습니다. 여전히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둘의 바뀐 분위기를 보았을 때 화해의 손짓 같았어요. 그때서야 아이는 얼굴에 화색을 띠었고 저는 그 아이의 맑고 환한 미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저는 그들의 조용한 대화를 내내 몰래 지켜봤지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척 실눈을 뜨고서요. 이제 겨우 소강상태에 접어든 그들의 평온한 대화에 방해가 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제가 그들의 대화를 처음부터 엿듣고 있었다는 걸 그들이 알게 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모녀는 침묵 속에서 대화를 이어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잡고 휴게실을 나갔습니다. 저도 박물관엔 오래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지친 것도 있었고 더 이상 조용한 유물들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 길로 용산역에 가서 저녁으로 칼국수를 먹으며 멍하니 유리벽 바깥의 사람들을 쳐다보다가, 시간에 맞춰 열차를 타고 목포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왜 모녀가 조용한 대화를 나누던 그 광경이 지금도 잊어지지가 않을까요. 모르겠습니다. 종종 그들의 조용한 대화가 떠오릅니다. 그건 제가 조용한 곳,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는 조용한 사람이기 때문일까요. 말을 하지 않는 것과 말을 하지 못하는 것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엔 침묵이라는 투명하고 둥그스름한 항아리를 소중히 껴안고, 깨뜨리지 않게 조심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죠. 깨뜨리지 않는다면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품에 안긴, 달과 사람을 반씩 닮은 그 항아리를요.

유리벽 바깥으로 사람들이 휙휙 지나갑니다. 유리벽 바깥의 사람들과 달리 유리벽 속의 유물들은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박물관에서 만난 그 아이는 말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말을 하지 못했던 걸까요. 저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일까요, 하지 못하는 사람일까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는 그 모녀의 대화를 목격한 게 아니라, 엿들었다고 기억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매일 그들을 관찰하며 생각하곤 합니다. 아, 사람들은 오늘도 바쁘게 살아가구나. 아, 누군가는 내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지. 아, 하지만 그들의 손은 왜 이리도 따듯해. 매일 그들에 관한 감상을 쓰죠.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혼자서 떠올리고 혼자서 대답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품에 안은 침묵의 항아리가 깨질까 조심하며 말을 아낍니다. 소음 속에서 듣지 못하는 것을 침묵 속에서 들어요. 어쩌면 인간을 감상하는 일은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자 항아리 (조선 17-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4	또 한 번 날자꾸나 ｜ 이서영	공통점	10달 전	6
3	고향 ｜ 김나연	공통점	11달 전	10
2	기숙사에서 ｜ 김원경	공통점	11달 전	8
1	달과 항아리 ｜ 조온윤	공통점	11달 전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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